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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그룹 창업자 정주영

by 현와 orca 2024. 4. 18.

대한민국 기업가이자 현대그룹 창업자인 정주영 회장은 강원도 아산리에서 태어나 청일전쟁과 한국전쟁을 겪으며 숱한 고난에도 돌파구를 찾으며 사업을 일궈낸 인물입니다. 현대자동차, 현대건설, 현대중공업 등을 설립하여 현 근대사에 한국이 경제적으로 성장하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정주영 회장의 생애와 현대그룹 설립 과정, 업적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정주영 생애

  • 정주영은 1915년 11월 25일 강원도 통천군 답전면 아산리에서 6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통천 송전소학교를 졸업하고 가난한 집안 탓에 가출을 반복하며 막노동과 쌀 배달 일을 합니다. 1938년 상회 주인으로부터 쌀가게를 인수하여 경일 상회를 운영하지만 2년 만에 청일 전쟁이 발발하며 일제가 식량배급을 실시하며 폐업하게 됩니다.
  • 1940년 경성에서 가장 큰 경성서비스공장의 직공이었던 이을학의 소개로 '아도서비스'라는 자동차 수리공장을 빚을 내어 인수합니다. 하지만 한달도 안되서 공장이 불에 타버리고 또다시 빚을 내어 자동차 수리 공장을 시작하지만 일본의 기업정리령에 공장을 빼앗기며 시련을 겪습니다.
  • 1946년 4월 현대자동차공업사를 설립하고 1947년 현대토건사를 설립하며 건설업에도 진출하게 됩니다. 1950년 두회사를 합병하여 현대건설 주식회사를 설립하게 됩니다. 하지만 1950년 한국 전쟁이 발발하며 정주영은 가족들과 함께 부산으로 피난을 떠났고 미군사령부 통역장교였던 동생 정인영 덕분에 토목사업을 지속하며 미군의 발주 공사를 독점하게 됩니다.

 

정주영 현대그룹 설립

  • 한국 전쟁 이후 현대건설은 도시 재생과 도로, 집, 건물 등을 복구하는 건설 수주가 늘어나며 사업을 확장하여 시멘트 공장을 설립하며 이후 국내 건설사 중 도급한도액 1위를 차치하기도 합니다.
  • 1967년 현대자동차주식회사를 설립하고 이후 본격적으로 해외건설시장을 개척하고 울산에 조선소를 건설하고 서산 앞바다 간척 사업을 진행하며 대기업으로 발돋움합니다. 1971년 1월 현대건설, 현대시멘트주식회사, 현대자동차주식회사를 통합하는 현대그룹을 창업하며 정주영은 대표이사 회장으로 취임하게 됩니다.
  • 1971년 9월 정주영 회장은 정부의 제3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일환으로 조선소 설립을 요구받자 현대건설 산하에 조선사업부를 신설하고 해외사업자금을 빌리기 위해 애플 도어의 롱바톰 회장을 만나게 됩니다. 이때 롱바톰 회장에게 500원 지폐에 그려진 거북선을 보여주며 '한국은 16세기에 세계 최초로 철갑선을 만든 나라입니다. 우리가 영국보다 300년 앞서 철갑선을 만들었으니 돈을 빌려주면 조선소를 지어 배를 수주하여 갚겠습니다'라는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이에 롱바톰 회장은 배를 먼저 수주해 오면 돈을 빌려주겠다고 하자 정주영 회장은 그리스 선박왕 리바노스를 만나 26만톤급 선박 수주 계약을 따내며 영국 바클리스 은행에 차관을 빌리게 됩니다.
  • 1973년 현대조선중공업(주)가 설립되며 건설에 들어갔고 정주영 회장은 수주한 선박의 납기를 맞추기 위해 조선소와 선박을 동시에 만드는 기적을 이뤄냅니다. 하지만 1973년 오일 쇼크의 여파로 유조선을 주문했던 곳들이 배를 인도해 가지 않자 정주영 회장은 울산 바다에 있던 유조선 3척을 가지고 1976년 해운회사 아세아상선(현대상선)을 설립하며 원유 수송을 시작합니다.

 

정주영 회장의 업적

  • 정주영 회장은 1978년 아산사회복지사업재단과 현대고등학교를 설립하였고 1981년 88서울올림픽 유치위원회 위원장으로 나서 올림픽 유치 활동을 추진하며 일본 나고야를 상대로 1988년 하계 올림픽 유치에 성공합니다.
  • 1992년 12월 통일국민당을 창당하며 제14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지만 김영삼과 김대중에게 밀리며 낙선하게 됩니다. 하지만 선거 직후 김영상 정부에 정치 보복을 당하며 비자금 관련하여 강도 높은 세무조사를 받으며 정치계에서 물러납니다. 이후 정주영 회장은 김대중 대통령으로 정권이 교체된 후 적극적으로 후원을 시작합니다.
  • 정주영 회장은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에 대북 사업을 지원하며 금강산 개발 사업을 추진합니다. 1998년 6월 16일 지칭 '통일소' 소 500마리와 판문점을 지나 북한을 방문하였고 그해 10월 27일 소 501마리를 더 가지고 가며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습니다. 그리고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남북 협력 사업을 추진하며 결국 금강산 관광 사업을 성사하였고 2000년 분단 이후 처음으로 남북 정상 회담이 개최되는 계기가 됩니다.
  • 말년 명예회장을 퇴임한 후 자식들의 불화로 힘든 시간을 보냈으며 2001년 3월 21일 87세의 나이로 건강이 악화로 사망하자 사후에는 현대그룹이 각자 현대중공업, 현대백화점, 현대자동차, 현대건설 등으로 분해됩니다.

 

정주영 회장은 88서울올림픽 유치를 성공시키고 남북 화합을 이끌어 금강산 관광 사업을 성사하는 등 사회적으로도 기여를 한 인물로 정주영 회장의 생애와 현대그룹 설립 과정, 업적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