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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 혁명과 5·16 군사 정변

by 현와 orca 2024. 4. 9.

4·19 혁명은 이승만의 독재 정치와 3·15 부정 선거에 대항하기 시민들이 일으킨 민주주의 혁명으로서 수많은 희생을 낳았지만 결국 이승만 정권을 물러나게 했습니다. 5·16 군사 정변은 4·19 혁명으로 민주당이 정권을 잡았으나 개혁 방향과 속도에서 여전히 혼란스러운 틈을 타 박정희와 군인들이 군사 정변을 일으키고 군정이 시작되는 사건으로 이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4·19 혁명의 배경

  • 1960년 4월 19일 이승만의 독재 정치와 3·15 부정 선거를 대항하기 위해 대한민국의 시민들이 일으킨 민주주의 혁명입니다. 이승만은 1948년 우리나라 첫 대통령으로 남북한의 전쟁으로 혼란스러운 시기에 헌법을 두 번이나 고치며 2대, 3대 대통령까지 재임하며 무려 12년을 대통령 자리에 있었습니다. 이승만의 독재 정권으로 시민들의 생활은 갈수록 어려워지며 불만이 높아졌습니다.
  • 1960년 3월 15일 4대 대통령 선거에서 85세였던 자유당 이승만이 다시 후보로 나왔고 민주당 조병옥 후보와 함께 경선을 앞두고 있었는데 선거를 한 달 앞두고 민주당 조병옥 후보가 갑자기 사망하고 맙니다. 이로써 대통령 후보는 이승만 단독이 되었고 문제는 부통령 선거에서 발생합니다. 부통령 후보로 나왔던 민주당 장면이 선전하며 자유당 이기봉이 불리해집니다.
  • 이에 자유당은 부통령 이기붕의 당선을 위해 공무원을 동원하여 선거일 전에 투표, 투표함 바꿔치기 등을 하며 불법 선거를 저지릅니다. 결국 민주당의 이승만과 이기봉이 부정행위로 승리하며 이것이 계기가 되어 전국의 지역에서 이승만과 민주당을 반대하는 규탄 시위가 벌어집니다. 선거일에는 마산에서 부정 선거 무효를 시민의 시위가 있었는데 이승만 정권은 경찰을 동원해 무력으로 강제 진압합니다.
  • 1960년 4월 11일 3·15 마산 시위 이후 실종됐던 마산상업고등학교 학생 김주열이 한 달 만에 최루탄이 눈에 박힌 시체로 바다에서 발견되며 국민들의 분노가 폭발하였고 이 사건을 계기로 4·19혁명이 일어나게 됩니다.

 

4·19 혁명

  • 1960년 4월 19일 학생과 시민 수십만명의 시위대가 서울에서 시위를 벌이며 4·19혁명이 일어납니다. 시위대는 경무대와 이기붕의 자택으로 향하며 부정 선거 책임자와 이승만 독재 정권의 타도를 외쳤습니다. 그러자 이승만 정권은 경찰과 군을 동원하여 무력을 행사하며 강제 진압을 하였고 수백명의 시민들이 다치거나 사망했습니다.
  • 이승만 정권의 무자비한 진압 모습을 보며 국민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고 전국에서 시위가 벌어집니다. 이에 자유당은 이기붕을 물러나게 하여 사태를 수습하려 했으나 4월 25일 전국 대학교수들이 모여 시국 선언문을 발표하며 '학생의 피에 보답하라'는 골자로 평화시위를 벌였고 시민과 학생들의 지지를 받습니다.
  • 이에 4월 26일 다시 시민들의 대대적인 시위가 벌어지고 결국 이승만이 대통령에서 물러나며 미국 하와이로 망명을 가게 됩니다. 이승만 대통령이 물러난 이후 내각책임제 개헌이 이루어지고 국회에서 윤보선이 4대 대통령으로 선출되고 장면이 국무총리로 임명됩니다.

 

5·16 군사 정변

  • 1961년 5월 16일 박정희를 중심으로 일부의 군인들이 정변을 일으킨 사건입니다. 4·19 혁명으로 민주당 정부가 들어섰으나 사회는 여전히 혼란스러웠고 개혁의 방향과 속도에 갈등이 생긴 틈을 타 군사 혁명 위원회를 설립하고 공산주의 반대, 국민들의 생활 개선, 우방과의 유대 강화 등의 혁명 공약을 내세우며 군정을 실시합니다.
  • 정변의 성공으로 장면은 사퇴하였으며 정권 또한 군사 혁명 위원회가 장악하며 군사 통치가 시작됩니다. 제2공화국 시절의 정치인들은 활동이 금지되었으며 사회단체도 해산되었고 집회와 시위 또한 금지됩니다. 또한 언론과 출판을 통제하고 검열합니다.
  • 박정희는 2년 안에 정치가에게 정권을 넘기고 군대로 돌아가겠다고 약속했지만 지키지 않았고 중앙정보부를 만들어 정권을 유지 할 목적으로 정보를 수집하고 반대 세력을 조종하고 탄압합니다. 중앙정보부를 바탕으로 공화당 조직을 설립하였고 헌법을 개정하여 대통령이 강력한 권한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듭니다. 결국 박정희는 1963년 8월 30일 대통령 선거에서 5대 대통령으로 당선되며 1979년까지 무려 5~9대까지 5번의 대통령을 역임하며 독재 정권을 시작합니다.

 

4·19 혁명은 시민들이 자주적으로 일으킨 민주주의 혁명으로서 큰 의미가 있으며 5·16 군사 정변은 박정희가 헌법 개정까지 해서 독재 정권을 시작하는 계기 된 사건으로 이에 따라 제3공화국의 출범이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