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1545년~1598년)은 조선 말기의 장군으로서 왜적의 침입으로 혼란스러운 시기 거북선을 만들어 조선의 해군을 이끌고 일본의 침략을 막는 데 큰 역할을 한 역사적 인물입니다. 세종대왕과 함께 국민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 영웅으로서 임진왜란 기간 한산도대첩, 명량 대첩 등 다수의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며 조선을 지킨 이순신 장군의 생애와 활약, 거북선 이야기에 대해 알아봅시다.
이순신의 생애
- 이순신의 생애를 살펴보면 1545년 서울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활쏘기를 좋아하고 뛰어난 무예 실력을 보였으나 32세의 늦은 나이에 무과에 급제하여 무관 생활을 시작합니다. 이순신 무관이 되고 북쪽에서 10년 동안 장수로 지냈는데 유성룡의 추천으로 전라 좌수사로 임명되었습니다. 이때 이순신은 허술했던 수군을 일으키고 언제 전투가 벌어져도 싸울 수 있도록 대비하기 위해 전함을 건조하고 군대를 정비하며 왜군의 침략에 대비하게 됩니다.
이순신의 활약
- 마침내 임진왜란이 터지고 이순신은 조선의 해군을 이끄는 장군으로서 1592년(선조 25년)부터 시작된 임진왜란 기간에는 일본의 침략을 막기 위해 많은 전쟁을 치러냈습니다. 그의 지휘 아래에서 조선 해군은 한산도 대첩, 명량 대첩 등 다수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 1592년 한산도 대첩은 경남 통영의 한산도 앞바다에서 일본함대에 승리한 전투로 학익진 전법을 이용하여 적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적의 약점을 찾아내어 전략적으로 전투하여 승리하였습니다.
- 이순신은 전쟁 중에도 정치적인 갈등과 대결을 겪으며 원균의 모함으로 고초를 겪고 사형 위기까지 갔으나 백성과 관리들의 탄원으로 결백을 증명하고 사면되어 권율 장군 밑에서 백의종군하라는 명을 받습니다. 그러나 얼마 후 왜군이 다시 침략하였고 명량대첩이 일어납니다.
- 1597년 명량대첩은 이순신의 가장 유명한 전투로 조선 해군이 일본 함대를 상대로 승리한 역대 최대 규모의 해전 중 하나로 평가됩니다. 이순신의 전략과 지휘 능력은 이 해전에서 최고조에 이르렀으며, 13척의 배로 130여척의 왜군에 맞서 대승을 거두었으며 이로써 그의 명성은 더욱 커졌습니다. 명량대첩은 조선의 독립과 안전을 위협하는 임진왜란 중 승리한 중요한 전투였습니다.
- 조선의 침략을 주도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으면서 일본군은 철수를 시작했는데 이순신은 돌아가는 왜군을 마지막으로 공격하기 위해 노량진에서 해전을 벌이지만 유탄에 맞아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는 말을 남기고 전사하였습니다.
- 이순신은 시문에도 능하여 '난중일기'라는 임진왜란 당시의 전쟁 상황을 일기를 기록하였으며 이는 1962년 12월 20일 국보로 지정되었습니다. 정식명칭은 '이충무공난중일기부서간첩임진장초'으로 2013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도 등재됩니다. 난중일기의 내용은 인간 이순신의 모습과 부하와 백성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 부하들과의 의견교환, 전쟁 과정과 전력 등이 담겨있으며 임진왜란 당시의 상황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유산으로 남았습니다.
거북선 이야기
- 거북선은 조선시대에 왜적을 격퇴하기 위해 이순신 장군이 판옥선을 개량하여 만든 거북 모양의 함선입니다. 단단한 소나무로 만든 거북선은 용머리 모양 뱃머리를 달고 배의 윗부분을 판자로 덮은 뒤 쇠못을 박아 적이 배에 오르지 못하게 하고 사방으로 대포를 발사할 수 있도록 만들었는데 포구를 제외한 곳은 판자로 가려서 안에서는 밖을 볼 수 있지만 밖에서는 배 안을 볼 수 없도록 만들었습니다. 임진왜란 때 당포 해전, 한산도 대첩 등 여러 전투에서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 거북선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조선왕조실록에 담겨있으며 거북선은 현재 유물이나 잔해가 남아있지 않으며 서양에서는 세계 최초의 철갑선으로 소개하지만 철갑선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은 어떤 기록에도 철갑을 둘렀다는 근거가 없다며 현재까지도 논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순신은 조선의 장군으로서 임진왜란으로 어지러운 시기 다수의 전투에서 일본해군을 격퇴하며 전쟁을 치른 용맹한 위인입니다. 이순신 장군의 생애와 활약, 거북선 이야기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