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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와 병자호란

by 현와 orca 2024. 3. 30.

조선의 16대 왕 인조는 광해군을 폐위시키고 반정으로 왕위에 올랐으나 청과의 전쟁에서 패하며 삼전도 굴욕을 겪고 병자호란 등 내란이 빈번하게 발생한 시기로 광해군 때의 중립 외교를 버리고 친명 배금 정책을 펼치기도 했던 인물입니다. 이에 따라 후금은 병자호란을 일으키고 조선은 후금에 군신 관계를 맺고 인조는 삼전도의 굴욕을 겪게 됩니다. 인조의 생애와 인조의 즉위 이후, 병자호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인조의 생애

  • 인조는 14대 임금 선조의 다섯번째 아들 정원군과 인헌왕후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인조의 막냇동생인 능창군이 억울하게 역모 사건에 휘말리며 광해군에 의해 죽고 이 사건으로 아버지 정원군까지 화병을 얻어 세상을 떠나자 인조는 광해군에 복수하고자 반정의 꿈을 키우게 됩니다.
  • 친명 배금(명나라와 친하고 후금을 배척하는 정책)의 뜻을 가진 서인들과 함께 광해군의 중립 외교와 폐모살제를 근거로 들며 반정을 일으켜 왕위에 오르게 됩니다. 즉위 직후 반정에 공을 세운 서인 세력들을 중심으로 정부를 구성하고 왕권을 강화하는 데 집중합니다.

 

인조의 즉위 이후

  • 인조는 광해군의 중립 외교을 버리고 친명 배금 정책으로 전환하자 후금은 불만을 품게 됩니다. 당시 명나라는 오랜 전쟁과 내부 문제로 쇠약해진 상태였고 후금은 세력이 커지며 성장하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인조는 명과의 의리를 지킵니다.
  • 인조반정 시 큰 공을 세웠던 이괄이 서인들에게 배척당하며 논공행상에 불만을 가지고 반란을 일으킵니다. 인조는 이 반란으로 공주로 피난을 가게 되고 이괄의 군대는 도원사 장만이 이끄는 토벌군에 패하며 후퇴하게 됩니다. 이괄은 부하였던 이수백과 기익헌의 배신으로 살해됩니다. 그리고 이괄의 부하 일부는 후금으로 도망가 광해군이 부당하게 폐위되었으며 인조의 부당성을 강조하며 조선에 전쟁을 일으킬 것을 종용합니다.
  • 1627년 1월 '광해군의 원수를 갚는다'는 명분으로 이괄의 부하들이 앞장서 후금과 함께 조선을 침략하며 정묘호란이 일어납니다. 인조는 강화도로 피신하였다가 후금의 '형제 관계' 요청으로 한발 물러나 화친을 맺고 대신 조선은 명을 적대하지 않아도 된다는 약속을 받으며 후금의 군대는 철수하게 됩니다.
  • 1636년 후금은 국호를 청으로 고치고 명과의 전쟁에서 우위에 서게 되자 재차 입장을 바꿔 조선에게 군신 관계를 맺고 신하로서 자신들을 섬기라고 요구합니다. 조선의 조정은 두파로 나뉘는데 인조는 청을 배척하는 척화파를 지지하게 되고 청의 요구를 거부하며 결국 병자호란이 발발하게 됩니다.

 

병자호란

  • 1636년 12월 청이 12만 대군을 끌고 조선에 침입하여 10일 만에 한양 근처로 도달하자 인조는 강화도로 피신을 가려고 합니다. 하지만 길목이 차단되며 한양을 지키던 요새였던 남한산성으로 피신하게 됩니다. 전쟁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았던 조선은 남한산성에서 45일간 추위와 굶주림을 견디며 항전 하지만 강화도가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결국 항복하게 됩니다.
  • 청은 조선 왕의 항복을 요구했고 버티던 인조는 항복을 하기 위해 한겨울에 삼전도로 나가 청의 태종을 향해 무릎을 꿇고 삼배구고두례를 행합니다. 세 번의 큰절을 할 때마다 머리가 땅에 닿아 쿵 소리가 나도록 숙이는 항복 의식을 행하자 인조의 이마에서 피가 흐르며 삼전도의 굴욕을 겪게 됩니다. 결국 조선은 청의 신하로 복속되고 인조의 장남과 차남인 소현세자와 봉림대군, 척화파 신하들, 조선의 백성들이 청에 인질로 끌려가게 됩니다.
  • 소현세자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청에서 생활하며 훌륭한 외교관의 역할을 했고 8년 만에 조선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하지만 아버지 인조는 청이 자신을 왕에서 끌어내리고 소현 세자를 왕으로 세우려 한다고 오해하며 질투하고 귀국한 지 3일만에 돌연사합니다. 정확인 사인은 알 수 없으나 인조가 아들 소현세자에게 조금의 애정 조차 없었으며 그의 식속들까지 사약을 내리고 유배를 보내며 차남이었던 봉림대군을 세자로 앉힙니다.

인조는 광해군의 도덕성의 문제 삼으며 반정에 성공했지만 병자호란에서 삼전도의 치욕적인 역사를 남깁니다. 또한 외세의 흐름을 꿰뚫지 못하고 병자호란이 일어나게 만든 무능력한 왕이었습니다. 인조의 생애와 즉위 이후, 병자호란 과정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