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제26대 왕이자 대한제국 제1대 황제인 고종은 조선의 마지막 임금으로서 대한제국을 선포하며 광무개혁을 통해 자주적인 근대 국가와 황제권 강화를 이루고자 하였으나 일본에 의해 강제로 체결된 을사조약을 반대하며 강제로 퇴위 되었고 결국 일본에 국권을 빼앗기고 식민지 통치를 받게 만든 인물입니다. 고종의 생애와 대한제국 제1대 황제 고종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고종의 생애
- 조선의 제25대 임금 철종이 후사 없이 승하하자 신정왕후 조 씨와 고종의 아버지였던 흥선대원군이 손잡고 고종을 왕으로 세우게 됩니다. 고종은 12세의 어린 나이었기에 아버지 흥선대원군이 10년간 섭정을 하였지만 성장한 뒤에는 왕비인 명성황후와 유림의 도움을 받아 통치권을 장악합니다.
- 흥선대원군의 10년간의 집권이 몰락하자 권력은 고종의 왕비였던 명성황후와 민씨 일족이 주축이 되었으며 고종은 명성황후의 도움을 받으며 통치를 시작합니다.
- 고종은 흥선대원군의 쇄국 정책을 버리고 일본과 국교 수립에 나서 강화도 조약을 맺습니다. 조선이 외국과 최초로 맺은 근대적 조약이었지만 불평등한 조약이었으며 조선의 부산, 원산, 인천의 항구를 개항 해야했으며 치외 법권을 인정하여 일본인의 범죄 발생 시 일본의 법률에 따라 처벌한다는 조항과 조선 연안의 측량을 자유롭게 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있었습니다.
- 강화도 조약 이후 본격적으로 개화 정책을 시작하며 내부적으로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합니다. 1882년 신식 군대와 구식 군대의 차별 대우와 급료 미지급의 불만으로 임오군란이 발생합니다. 구식 군인들은 원인으로 명성황후와 민씨 일족을 지목하며 군란을 일으키고 명성황후는 피신을 갑니다. 이를 틈 타 흥선대원군이 10년 만에 재집권하여 명성황후가 사망했다고 선포하며 장례를 치릅니다. 명성황후는 청에 도움을 받아 복권하며 이 사건으로 청의 군대가 조선에 주둔하게 됩니다.
- 1894년 동학농민운동이 발생하고 농민들과 동학군의 기세에 위기를 느낀 조선이 청에 군대를 요청합니다. 하지만 청이 군대를 파병하자 일본은 청일이 맺은 톈진조약을 빌미로 조선에 들어오게 됩니다. 동학농민운동이 철수했음에도 일본은 조선의 철수 요구에 불응하며 내정에 간섭하더니 결국 청일 전쟁이 터지고 일본은 승리합니다.
- 일본은 조선에서 세력을 확장하기 위해 경복궁을 침입하여 명성황후를 시해하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고종은 러시아에 신변 요청을 하고 러시아 공사관에서 지내게 됩니다. 이후 러시아 공사관에서 지내던 고종이 1년 만에 환궁하여 국가의 자주독립을 확고히 하기 위해 연호를 '광무'로, 조선을 '대한제국'으로 선포합니다.
대한제국 제1대 황제 고종
- 대한제국 제1대 황제 고종은 광무개혁을 추구하며 강력한 황제권과 경제·사회적 근대화를 위한 정책을 펼치지만 결국 일본의 침략으로 결국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습니다.
- 러·일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가쓰라·태프트 밀약, 포츠머스 조약을 통해 열강들로부터 한국에 대한 지배권을 인정받았고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로 체결되며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합니다.
- 고종은 을사조약이 일본의 강압 아래 이루어졌으니 무효함을 주장하며 네덜란드에서 열리는 만국 평화회의에 특사(이상설, 이위종, 이준)를 파견하지만 헤이그에 특사를 파견한 사실을 안 일본에 의해 실패로 돌아가면 이를 계기로 고종은 황제의 자리에서 강제로 퇴위당하게 됩니다. 이후 한일합병조약이 체결되고 대한제국이 멸망하게 되며 일본의 식민 통치를 받게 됩니다.
- 고종은 1919년 1월 21일 덕수궁에서 갑자기 사망하는데 차에 독이 있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추후 고종의 승하로 인해 조선의 백성들이 모여 1919년 3.1운동이 전국적으로 일어나는 계기가 됩니다.
조선의 마지막 임금인 고종은 순조만큼이나 역사적으로 평가가 좋지 못한 왕입니다. 대한제국을 세우며 근대국가를 꿈꿨으나 국권을 지키지 못하고 명성황후까지 시해되는 것을 지켜봐야 했던 파란만장한 삶이었습니다. 고종의 생애와 대한제국 제1대 황제 고종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