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초기에는 정부의 중농억상 정책으로 농업을 중시하고 상업을 억제하며 상업하려는 자들도 국가에 등록하고 허가를 받아 운영할 수 있었으며 수공업도 국가가 직접 운영하는 관영수공업 형태였습니다. 하지만 조선 후기에는 자유경제 체제로 변하며 자유 상인이 늘어나고 민영 수공업이 활성화됩니다. 조선 시대의 수공업 활동과 상업 활동과 조선 후기 자유경제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조선의 수공업 활동
- 조선 초기에는 수공업 활동에 대한 국가 통제가 강화되며 관영 수공업 체제로 운영됩니다. 관청에 등록된 수공업자를 관장이라 불렀으며 관장들은 부역으로 동원되어 물품을 제작하고 자신의 책임량을 초과한 생산품은 세금을 내고 판매가 가능하였습니다. 16세기 이후에는 부역 거부 현상이 일어나며 관영수공업은 쇠퇴하고 민영 수공업이 점차 발달하게 됩니다.
- 조선 후기 자유 시장이 활성화되며 민영 수공업자들은 국가에 장인 세를 내고 양반의 사치품이나 농기구 물품을 제작, 공급하였으며 수공업자에게 원료와 돈을 미리 주고 납품 기일을 맞춰주는 선대제 수공업도 등장하게 됩니다. 또한 농가에서는 자급자족 형태로 의류 같은 생활필수품을 만드는 가내수공업이 행해졌습니다. 특히 목화 재배의 확대로 무명 생산이 점차 증가하게 됩니다.
조선의 상업 활동
- 조선 초기에는 정부의 중농억상 정책으로 농업을 중시하고 상업을 억제하는 정책을 시행합니다. 조선에서는 농업을 가장 중요시 하며 농민들이 농사를 포기하고 수익을 좇아 상인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국가에서 관리하에 운영됩니다.
- 상인들은 국가에 등록 하고 관의 허가를 받아 상업에 종사할 수 있었으며 개경으로부터 이주한 시전 상인들이 주를 이루었으며 이들은 종로 거리에 상점가를 따로 조성하였습니다. 정부는 이들에게 점포세와 상세를 거두었으며 왕실이나 관청에 물품을 공급하도록 하였는데 그 대가로 국가의 허가를 인정받지 못한 상인인 난전을 단속해 주고 시전상인이 취급하는 특정 상품에 대한 독점 판매권을 인정받는 금난전권을 부여받았습니다.
- 시전 중에는 명주·모시·종이·삼베·무명·어물을 판매하던 육의전이 가장 번성하였습니다. 정부에서는 경시서를 설치하여 불법적 상행위를 통제하였습니다.
- 15세기 후반에는 농업생산력의 발달로 서울 근교와 지방에 장시가 증가합니다. 이는 며칠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열리는 5일장의 시장으로 발전한 것으로 정부에서는 농민들이 농업을 버리고 상업에 몰릴 것을 우려해 억제 정책을 시행하였으나 실패하였고 16세기 중엽에는 전국적으로 확대되며 보부상의 활약이 나타나게 됩니다.
- 보부상은 여러 장시를 돌면서 농산물, 수공업 제품, 수산물, 약재 등을 판매합니다. 조선 초기에 만들어진 저화, 조선통보 등의 화폐는 농민들의 외면으로 유통은 부진하였고 농민들은 주로 쌀과 무명을 이용하여 물건을 교환하였습니다.
- 조선 정부는 대외 무역에 대해서 통제를 강화하면서 공무역 위주로 하였는데 명나라와는 사신 왕래에 따른 공무역과 사무역을 허용하였으며 여진에게는 국경 지역에 설치된 무역소를 통한 무역만 허락하였습니다. 일본과는 왜관을 중심으로 공무역이 이루어졌습니다.
조선 후기 자유 경제
- 조선 후기 양난 이후 호적대장이 불타고 양반으로 신분 상승한 사람들이 늘어나고 새로운 농법이 전국에 보급되며 자유 경제가 활성화됩니다. 임진왜란 이후 대동법이 시행되며 우리나라 최초의 동전 상평통보와 같은 화폐가 발달하게 되었으며 국가에 세금을 납부할 때도 활용됩니다.
- 조선 초기에는 포구는 곡물을 운송하는 곳으로만 활용되다 조선 후기에는 상업의 중심지가 되며 한강 유역을 중심으로 상인들이 상품을 배로 운송하며 활동합니다. 특히 포구 주변에는 상품 매매를 중개하고 수수료는 받는 객주와 상인들의 숙식을 제공해 주는 여각이 발달하게 됩니다.
조선 초기에는 모든 분야에서 국가의 통제하에 산업들이 이루어졌으며 조선 후기에는 자유 시장으로 변하며 민영화가 이루어집니다. 조선 시대의 수공업 활동과 상업 활동, 조선 후기 자유경제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