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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기 시대의 생활과 청동기

by 현와 orca 2024. 3. 22.

한반도의 청동기 시대는 기원전 20세기에서 15세기경으로 대표적인 유물인 청동기는 권력의 상징이 되는 표본이었습니다. 본격적인 농경 사회로 진입하였으며 벼농사를 하기 위해 배산임수의 자리에 정착하였습니다. 잉여생산물의 축적으로 권력이 등장하며 지배층이 생기는 시기로 청동기 시대 생활 형태와 거주 형태, 지배층의 등장으로 생기는 고인돌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청동기 시대의 생활

  • 청동기 시대의 생활은 신석기 시대에 비해서 생산 경제가 발달하며 일부 저습지에서 벼농사가 시작되며 쌀을 먹는 본격적인 농경 사회가 시작됩니다. 청동기 시대의 도구는 당연히 청동기이지만 이 청동은 만주에서만 제작되었기 때문에 양도 적고 제작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 청동은 지배가 자신의 권위를 나타내는 데 필요한 장신구류, 사냥과 전쟁에 필요한 무기류, 신에게 제사를 올리는 제기류 등 극히 제한적으로만 사용되었습니다. 대표적인 유물은 거친무늬 거울은 장신구, 비파형 동검은 무기, 농경 무늬 청동기와 방울 달린 청동기는 제기입니다. 하지만 일반 민중들은 귀한 청동기를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여전히 반달돌칼, 바퀴날 도끼 같은 농경용 석기를 사용합니다.

 

청동기 시대의 거주 형태

  • 청동기 시대의 거주 형태를 살펴보면 뒤에는 산이 있고, 앞에는 물이 있는 배산임수의 자리에 터를 잡으며 강가나 바닷가에서 벗어나 물가 근처이면서 바람을 막아 줄 수 있는 안전한 곳에 정착하여 움집과 다르게 땅 위에 그대로 지상 가옥을 짓습니다.
  • 지상 가옥은 기둥을 받치는 주춧돌을 이용하였으며 화덕의 위치도 중앙에서 한쪽 벽면으로 이동했습니다. 마을의 규모도 커졌으며 가옥의 형태가 4~8명이 거주할 수 있는 크기로 만든 점을 보아 일부일처제가 정착되고 가부장적 가족 형성이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지배층의 등장과 고인돌

  • 농경의 발달로 협동 작업의 필요성을 느끼고 많은 수의 집들이 모여 취락을 형성합니다. 잉여 생산물이 축적되고 이에 대한 소유권을 다투면서 권력의 개념이 생기고 자연스럽게 투쟁에 승리한 사람이 부족을 지배하는 군장이 됩니다. 청동기 시대에는 모든 분야에서 계급이 발생하며 이런 계급 문화를 보여주는 것이 바로 고인돌 무덤입니다.
  • 청동기의 대표적인 무덤은 고인돌, 돌널무덤, 돌무지무덤이 있으며 거대한 고인돌 무덤을 만들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동력과 위험이 존재하기 때문에 강제력을 가지지 않으면 축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고인돌은 최고 지배자의 무덤임을 알 수 있으며 덮개돌이 클수록 권력이 높은 사람이었습니다. 고인돌은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많으며 2000년 12월에 고창, 강화, 화순의 고인돌 유적지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 가부장적 사회가 형성되며 남녀 간의 위계 질서가 생기고 가족 간에도 분업이 형성되었는데 여성은 집안일을 담당하고 남성은 농사와 전쟁, 생산 등을 담당합니다.

 

청동기 시대의 예술

  • 토기는 식량의 생산과 저장을 알려주는 대표적인 유물로서 민무늬 토기, 미송리식토기, 붉은 간토기가 있으며 청동기 시대의 유물은 중국 만주에서부터 한반도에 널리 분포되어 있습니다. 특히 민무늬 토기는 무늬가 새겨지지 않은 평범한 토기이지만 한반도와 전 만주 지역에 출토되었으며 철기 시대에서도 사용되며 청동기를 대표하는 유물입니다. 미송리식 토기도 한반도 북부와 만주에서 출토되며 비파형 동검과 고인돌과 함께 청동기 시대를 기반으로 고조선이 건국되었음을 알려주는 유물입니다.
  • 울주 반구대의 암각화에는 고래, 늑대 등 동물들의 모습과 사람, 고래잡이, 물고기잡이, 사냥하는 모습이 표현되어 있으며 성공적인 사냥을 통해 풍요로운 삶을 기원하는 바람이 담겨 있습니다. 특히 고래잡이 그림은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는데 그물로 고래를 잡는 모습과 귀신고래 그림, 배를 타고 고기를 잡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큰 고래를 잡으면 많은 사람이 먹을 수 있었기 때문에 고래 사냥에 성공하기를 기원했습니다.

 

한반도 청동기 시대에는 발달된 농경 기술로 벼농사가 시작되고 잉여생산물이 생겨납니다. 이에 따라 거주 형태와 생활이 변화되고 사유 재산의 개념이 생기며 지배층과 피지배층이 구분되었습니다. 지배층의 권력과 존재를 알려주는 대표적인 유물 고인돌은 현재도 한반도에 유적으로 남아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