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구석기 시대의 생활을 살펴보면 약 70만년 전 시작되었으며 인간은 불을 사용하고 돌을 깨뜨려 도구를 만들기 시작했하였으며 도구의 이름은 뗀석기입니다. 뗀석기는 용도에 맞게 주먹도끼, 찍개, 긁개, 밀개 등으로 만들어 사냥과 채집을 할 때 사용하였으며 자연 경제 활동을 통해 살아가던 시기로서 한반도의 구석기 시대의 생활과 뗀석기, 자연경제, 유적지에 대해 자세히 알아봅시다.
한반도 구석기 시대의 생활과 뗀석기
- 한반도 구석기 시대의 생활을 살펴보면 약 70만년 전부터 사람들이 살기 시작했고 자연 경제 활동을 통해 살아갔습니다. 구석기인들은 처음으로 불을 사용하였고 원석에서 불필요한 부분을 떼어 내 제거한 뗀석기를 가지고 용도에 맞게 사냥과 채집을 하였으며 불을 사용하여 고기 등을 익혀 먹었습니다.
- 뗀석기는 주먹도끼, 찍개, 팔매돌을 비롯한 사냥용 도구와 사냥용 동물을 조리하는 도구인 긁개, 밀개가 주였으며 석기를 다듬는 방법에 따라 전기·중기·후기로 구석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전기 구석기 시대에는 돌에서 불필요한 부분을 떼고 몸통 부분의 석기를 여러 용도로 사용하던 시기입니다.
- 중기 구석기에는 몸통 부분에서 떼어낸 작은 부분을 석기로 만들어 하나의 용도로 사용하던 시기입니다. 후기 구석기 시대에는 몸통에 쐐기를 대고 때려 같은 모양의 석기를 여러 개 만들어 사용하였습니다.
- 구석기 시대 말에는 빙하기가 지나고 날씨가 따뜻해지며 환경의 변화로 빙하기의 큰 동물들이 사라지고 작고 빠른 동물들이 살게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잔석기라는 작은 뗀석기로 창, 작살, 톱 등을 만들어 사냥에 이용하였습니다. 이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자루를 끼워 쓸 수 있는 슴베찌르개가 대표 유물입니다.
- 구석기 시대의 사람들은 나뭇잎이나 풀을 엮어서 옷을 만들어 입었으며 추운 겨울에는 짐승의 가죽이나 털로 옷을 만들어 입었습니다.
구석기 시대의 자연 경제
- 구석기 시대에는 들짐승과 날짐승을 사냥하거나 하천에서 물고기나 조개를 잡아먹고, 열매를 따고 식물 채집하는 자연 경제 활동을 하였습니다. 자연에 의존하는 생활을 하며 한 곳에서 먹을거리를 해결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동 생활을 하였고 여름에는 시원한 강가에서 막집을 짓고, 겨울에는 비바람과 추위를 막아줄 수 있는 동굴에서 당장의 주거 문제를 해결하였습니다. 또한 맹수의 공격을 막고 사냥에 협동하는 데 필요한 정도의 무리가 모여 다녔으며 이동 생활 중에 헤어지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 일부일처제의 정조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부계 혈통이 분명하지 않아 모계를 중심으로 가족이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자연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당장의 식량 문제도 해결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잉여물을 두고 소유권을 다툴 일이 없었으므로 권력, 계급이 무의미하였으며 모든 사람이 평등한 사회가 유지되었습니다. 무리를 안내하는 인도자는 존재하였으나 권력을 가진 존재는 아니었습니다. 권력 계급이 존재하기 시작하는 것은 생산 경제의 비중이 늘어나고 잉여물이 발생하기 시작하는 청동기 시대 이후의 일입니다.
구석기 시대의 유적지
- 한반도의 구석기 시대 연구는 1960년대에 시작되었으며 공주 석장리, 단양 금굴, 청원 두루봉 동굴, 연천 전곡리, 단양 수양개 등 우리나라의 전국에 걸쳐 구석기 시대의 유물이 출토되었습니다. 특히 전곡리에서는 동북아시아 최초로 아슐리안 주먹도끼가 출토되었으며 청원 두루봉 동굴에서는 5세 정도의 어린아이의 뼈가 출토되었는데 이를 발견한 김흥수 씨의 이름을 따서 사람 뼈가 발견된 동굴은 흥수굴, 사람 뼈는 흥수아이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 구석기 사람들은 동굴에서 주로 생활하였기 때문에 동굴의 벽에는 사냥의 성공을 기원하며 사슴, 염소, 들소 등의 동물이 그려진 벽화를 그렸습니다. 단양 수양개나 공주 석장리 유적에서 발굴되는 고래나 물고기 조각품 또한 같은 의미이며 주술적 의미를 지닌 단순한 예술품들입니다.
한반도 구석기 시대의 자연 경제 생활과 유적지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특히 뗀석기를 사용하여 사냥과 채집을 하며 도구를 사용했던 점이 특징이며 평등한 사회 속에서 이동 생활을 했습니다. 현재 구석기 시대의 유물들은 한반도 곳곳에 남아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