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신석기 시대의 생활은 기원전 8000년경부터 기원전 1500년까지이며 신석기 시대의 유적은 한반도에 고루 퍼져 있습니다. 한반도의 신석기 시대의 생활은 생산 경제가 시작되는 시기로서 농경과 목축업이 시작되며 밭농사를 하였고 그로인해 정착생활을 시작합니다. 그 당시의 주거 형태와 농경 생활, 목축업, 가족 형성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한반도 신석기 시대의 생활
- 한반도 신석기 시대의 생활을 살펴보면 생산 경제가 시작되는 시기입니다. 처음으로 조, 수수 등을 재배하는 농경과 목축을 시작하였으며 밭농사를 시작하며 정착 생활을 하게 되었고 제대로 된 주거지가 필요했기 때문에 움집을 짓기 시작합니다. 땅을 파고 나뭇가지와 풀을 이용해 지붕을 삼고 남쪽으로 문을 만들고 움집의 중앙에는 추운 겨울을 견디기 위해 화덕이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 움집은 주로 강가나 해안에 만들어졌는데 농사도 지어야 하지만 여전히 물고기를 잡아야 했기 때문에 물을 끌어다 사용하기 좋은 위치에 정착합니다. 증거로 음식물을 저장했던 토기를 통해서 알 수 있는데 신석기인들이 사용했던 빗살무늬 토기를 살펴보면 뾰족한 밑 모양을 하고 있으며 일반 땅에는 세우기 어렵지만 강가나 해안의 습한 모래에는 꽂아 두기 좋은 형태입니다.
- 빗살무늬 토기는 봉산 지탑리, 서울 암사동, 김해 수가리 등에서 발견되며 이곳은 모래가 많은 해안 강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이외에도 민무늬 토기, 덧무늬 토기, 눌러찍기문 토기 등도 있으며 이 토기들은 농경을 통하여 식량을 생산하고 저장하였음을 나타내는 중요한 증거입니다.
농업 생산 경제
- 신석기 시대에는 밭농사를 시작하며 농업으로 생산 경제를 시작합니다. 농사를 짓기 위해 뗀석기보다 더 진화한 간석기가 등장하는데 이는 돌의 전부 또는 일부를 갈아서 만든 석기로 용도에 맞게 사용이 가능하여 농업과 목축업에 사용되었습니다. 대표적으로 돌로 돌괭이, 돌낫, 뒤지개 등을 만들어 농사를 지었으며 돌갈판과 갈돌은 곡식을 갈아서 사용하는 용도였습니다.
목축업 생산 경제
- 짐승을 잡아 우리에 가두어 가축으로 기르는 목축업이 시작되었으며 의복의 형태 또한 변하기 시작합니다. 구석기 시대의 풀잎 이나 동물 가죽옷에서 벗어나 신석기에는 가락바퀴와 뼈바늘을 이용하여 의복과 그물을 만드는 수공업이 이루어졌으며 조개껍데기로 만들 팔찌와 목걸이, 동물 송곳니로 만든 발찌 등의 장신구를 만들어 몸치장하였습니다.
신석기 시대의 가족 형성
- 신석기 시대에는 농사의 생산량은 여전히 적고 잉여물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여전히 평등한 사회 속에서 같은 혈연끼리 모여 사는 씨족과 부족 집단이 형성됩니다. 각 씨족은 배타적 생활 구역이 정해져 있어 다른 씨족 원이 자기 씨족의 영역에 침범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으며 결혼은 서로 다른 씨족끼리만 가능했습니다. 가까운 지역의 씨족들은 계속 혼인을 맺으며 점차 부족 사회가 이루어집니다.
신석기 시대의 예술 활동
- 신석기의 예술 활동을 살펴보면 농경과 깊게 관련이 있는데 농사를 짓고 정착 생활을 하면서 자연 현상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며 원시 신앙이 탄생합니다.
- 샤머니즘은 샤먼(무당)의 존재를 믿는 신앙으로 샤먼이 하늘의 신과 인간을 연결해 주는 존재이며 주술 행위를 통해 예언과 병을 치료하고 영혼을 인도한다고 믿었습니다. 애니미즘은 자연현상이나 자연물에도 정령이 있다고 믿으며 태양과 물을 숭배의 대상으로 삼아 풍요로운 생산을 기원하였습니다. 토테미즘은 동식물을 자기 부족의 기원을 담아 부족상징물로 삼아 숭배하였으며 신석기 사람들은 사람은 죽어도 영혼이 없어지지 않는다고 믿었으며 조상의 영혼이 후손에게도 영향을 준다고 믿으며 영혼과 조상을 숭배합니다.
- 대표적인 신석기 유물은 빗살무늬토기, 덧무늬토기, 이른 민무늬토기, 물결무늬 토기, 눌러 찍기 무늬 토기 등이 있으며 웅기 굴포리, 서울 암사동, 김해 수가리, 황해도 봉산 지탑리 등에 유적지로 남아있습니다.
한반도 신석기 시대는 본격적인 농업과 목축업을 통해 생산 경제가 시작되는 시기로 그로 인해 바뀌는 생활상과 주거 형태, 목축업, 가족 형성, 예술품, 신앙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