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9월 17일 개막하여 10월 2일에 폐막한 88서울올림픽은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며 전 세계에 한국의 고도성장과 경제 발전의 모습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으며 분단국가라는 특수한 상황에서도 세계 평화와 화합을 이뤄냅니다. 이 대회에서 한국은 종합 4위의 쾌거를 이루어냈고 서울올림픽 이후 한국은 정치적, 외교적으로 큰 성장을 이루게 됩니다. 88서울올림픽 유치 과정과 개막 및 폐막, 업적과 논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88서울올림픽 유치 과정
- 1979년 10월 박정희 정부는 제4회 하계 올림픽 서울 유치 계획을 발표합니다.하지만 박정희 대통령이 그해 10·26사태로 서거하며 최규하 대통령은 올림픽 유치 계획을 포기하게 되고 전두환 5공화국이 정권을 잡은 후에도 올림픽 유치는 지지부진하게 흘러갑니다.
- 전두환은 국민들의 군사정권에 대한 불만을 회피하기 위해 1981년 2월 26일 IOC(국제올림픽위원회)에 대한민국의 유치계획 신청서를 제출하고 IOC는 공식적으로 대한민국 서울과 일본 나고야를 올림픽 후보 도시로 선정합니다.
- 2년 전부터 철저하게 유치 준비를 했던 일본을 개발도상국이었던 한국이 이길 것이라고 여기는 여론은 거의 없었습니다. 또한 약 2조원이 자금이 필요했던 상황에 전두환 대통령은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 정주영 회장은 88서울올림픽 유치위원회 회장으로 임명되는데 훗날 자서전에서 사전에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임명되었으며 전두환 대통령은 망신만 당하지 말라는 식의 떠넘기기를 받아 직접 세계를 돌며 IOC 총회 개최 전까지 적극적인 유치 활동을 펼쳐나갑니다. 당시 일본은 IOC 위원들에게 세이코 최고급 시계를 선물하며 공세를 했지만 정주영 회장은 IOC 위원들이 묵는 숙소에 정성으로 만든 수제 꽃다발을 선물하며 오히려 한국의 꽃다발이 화제가 됩니다.
- 1981년 독일 바덴바덴에서 열린 총회에서 IOC 위원이 참여한 투표로 서울 52표, 나고야 27표를 받으며 1988 하계 올림픽 개최지로 서울이 선정됩니다.
- 올림픽 개최지로 선정이 되었지만 대한민국은 분단국가로서 공산주의 국가들의 참가 문제가 대두되며 난항을 겪습니다. 북한은 공산 국가들의 올림픽 참가를 막기 위해 로비 활동을 하기도 합니다. 이에 한국은 공산주의 국가 중 핵심이었던 소련의 올림픽 참가를 끌어내고 몽골, 베트남 등 아시아 공산 국가와 아프리카 국가들이 참가하며 160개국의 참가국을 이뤄내지만 결국 북한은 협의를 이루지 못하고 88서울올림픽에 참가하지 않습니다.
88서울올림픽 개막 및 폐막
- 1988년 8월 23일 그리스 올림피아 헤라 신전에서 채화한 성화는 그리스에서 출발하여 8월 27일 대한민국 성화 봉송을 시작합니다. 1936년 하계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손기정이 최종 성화봉송자로 나서며 88서울올림픽의 화려한 개막이 이루어집니다.
- 1988년 9월 17일 개막식 행사에서 상징으로 남은 행사는 7살 윤태웅 군이 혼자 굴렁쇠를 굴리며 주 경기장에 들어와 2분 동안 적막이 흐르며 경기장 중앙에서 굴렁쇠를 굴리고 손을 흔드는 장면이었는데 이는 전쟁 국가였던 한국의 전쟁고아 이미지를 탈피하고 평화의 의미를 담았다고 합니다.
- 성화 점화 당시 평화 상징 의미를 담아 풀어놓은 비둘기가 성화대에 앉아 날아가지 않자 행사 진행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점화를 하였는데 비둘기가 불타는 것 처럼 보여 큰 논란이 발생합니다. 사실 불에 탄 비둘기는 한마리였지만 카메라 각도로 인해 비둘기들이 전부 불에 타는 것처럼 보여 최악의 올림픽 개막식으로 선정되는 오명을 쓰기도 합니다.
- 전 세계 159개국, 13,304명의 선수와 선수단이 참가하며 올림픽 최대 대회 규모를 기록하였으며 16년만에 동서 진영의 선수단이 모두 참가하여 화합과 세계 평화를 위한 전진의 계기를 마련했습니다.
- 종합 메달 순위는 소련이 1위를 차지했고 2위는 동독, 3위는 미국이 차지합니다. 한국은 금 12개, 은 10개, 동 11개를 차지하며 종합 4위를 하는 쾌거를 이루어냅니다.
88서울올림픽 업적과 논란
- 88서울올림픽의 유치가 결정되자 한국은 전쟁과 분단국가의 폐허에서 주요 간선도로와 도심을 재개발하고 불량주택을 철거하고 재개발하면서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냅니다. 이는 한국의 고도성장과 경제 발전 모습을 전 세계에 알리고 외교 관계를 다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 하지만 올림픽 개최를 명목으로 경기장 건설과 환경 정비를 이유로 달동네와 판잣집을 무단으로 철거하며 인권 침해를 일으켰고 정부의 200만호 건설 공약으로 부동산 투기 열풍이 서울은 물론 지방 대도시로 퍼지며 부동산 가격이 치솟습니다. 전세와 월세 비용에 더해 물가도 급속히 오르며 서민들의 삶은 더욱더 힘들어집니다.
한강의 기적 88서울올림픽 유치 과정과 개막 및 폐막, 업적과 논란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